건축의 집(La Maison du Bâtiment), 천 가지 이야기를 품은 탑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북쪽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들어올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다. 48미터 높이의 이 건축물은 최근 미래적인 외관으로 개조되었지만, 과거에는 방치된 채 무단 점거자들과 예술가들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한때 건설·토목(BTP) 업계의 중심이었던 이 건물은 학생 기숙사로 변모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쳐 왔다.
건설 정보 센터에서 방치된 공간으로
1968년 개관한 '건축의 집(La Maison du Bâtiment)'은 300석 규모의 컨퍼런스 홀과 4,000㎡의 전시 공간을 갖춘 건설·토목(BTP) 전문가들의 본거지였다. 이곳에서는 건축가와 건설업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건축 자재와 기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상층부는 업계 연맹과 노동조합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6년, 이 건물에 있던 건설업체 10여 개가 실티게임(Schiltigheim)의 '유럽 기업 단지(Espace européen de l’entreprise)'로 이전하면서 건물은 텅 비었다.
2008년, 개발업체 '스피랄(Spiral)'과 보험사 '카막트(Camacte)'가 건물을 상업 공간과 주거 시설로 개조하기로 합의했으나, 석면 문제가 발견되면서 일부 철거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공동 소유주들은 계약 불이행을 주장하며 손해 배상을 요구했고, 법적 분쟁이 2016년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건물은 사실상 방치되었고, 무단 점거자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되었다.
몰래 열린 통로와 그래피티 예술
2010년 4월 7일, 켐스(Kems), 모크(Moke), TFG라는 지역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이 건물 옥상에 커다란 그래피티를 남겼다. 그들은 광고판 한 달 임대료가 3만 유로에 달하는 이곳을 무료로 활용하기로 했다. 스트라스부르 지역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모크는 자신과 동료들이 건물에 최초로 비밀 통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처음엔 건물이 완전히 봉쇄된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밤 11시쯤 탐색을 나갔더니, 합판으로 막아 놓은 곳이 있더라고. 거기에 태그를 몇 개 남기고, 한쪽 모퉁이를 뜯어내기 시작했지. 뒷면은 여러 겹의 보호막이 붙은 유리창이었어. 차 트렁크에서 망치를 찾아 구멍을 내기 시작했고, 몇 시간 뒤 드디어 안으로 들어갔어. 친구들을 불러서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전망을 즐겼고, 다음날 밤 다시 그래피티를 그리러 왔지.”
그렇게 건축의 집의 옥상에는 6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거대한 그래피티가 남겨졌다. 이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무단 침입하기 시작했고, 건물 내부는 새로운 점거자들의 공간이 되어 갔다.
무단 점거자들과 노숙자들의 안식처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떠난 후, 이곳은 노숙자와 청소년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2012년, 셀마(Selma)는 거리에서 생활하던 카야(Kaya)라는 청년과 친해졌다.
“그는 예전 사무실 중 하나를 작은 방처럼 사용했어. 나무 조각으로 문을 막아 두고, 추운 날이면 며칠씩 머물렀지. 그곳에는 나이 많은 노숙자들도 있었는데, 마약을 하거나 개와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았어. 우리는 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어. 무서웠거든.”
무단 점거 공간이었지만,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일부 학생들은 이곳을 ‘모험의 장소’로 여기기도 했다. 이네스(Inès)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클레베르 고등학교(lycée Kléber)에 다녔어. 학교에서 500m밖에 안 떨어진 곳이라, 쉬는 시간이 생기면 옥상에 올라가 전망을 즐기기도 했지. 때때로 친구들을 데려가 ‘멋진 장소’라고 보여주기도 했고.”
새로운 변신,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
2016년, 이 건물을 학생 기숙사로 개조하는 프로젝트가 승인되었고, 개발업체 에디피피에르(Edifipierre)가 이를 담당하게 되었다. 철거 계획은 취소되었고, 건물은 다시 공식적인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했던 이 건물은 이제 학생들이 거주하는 현대적인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한때 이곳을 점거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벽에 새겨진 채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