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CULTURE66 굴덴투름(Guldenturm), 스트라스부르의 사라진 탑 라 투르-오-플로랭(La Tour-aux-Florins) 또는 굴덴투름(Guldenturm)스트라스부르 크루트노(La Krutenau) 구역의 뱃사공 부두(Quai des Bateliers)와 취리히 거리(Rue de Zurich)의 모퉁이에 자리 잡은 라 투르-오-플로랭(La Tour-aux-Florins) 또는 굴덴투름(Guldenturm)은 중세 시대에 지어진 탑으로 1476년에 건설되었다. 이 탑은 외부의 위협, 특히 부르고뉴의 샤를 1세 공작(Charles le Téméraire)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세워졌으며, 크루트노가 적에게 점령당할 경우 방어 체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스트라스부르 중심을 흐르는 일 강(Ill) 강변을 따라 위치했던 중세 항구의 입구를 감시하는 기능도 .. 콜마르 출신의 유명 인물들 콜마르의 유명 인물들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역에 위치한 콜마르(Colmar)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중세 시대의 건축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단순히 관광지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예술, 역사, 종교,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하며 프랑스와 유럽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다음은 콜마르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초기에 활동한 독일 출신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는 강렬한 색채와 극적인 표현으로 유명하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바로 ‘이젠하임 제단화’(Isenheim Altarpiece)로, 이 작품은 당시 병자들을 돌보던 성 안토니 수도원의 제단을 .. 알자스의 불타는 원반(disque enflammé) 던지기 풍습 불타는 원반 던지기불타는 원반 던지기 풍습은 봄철 춘분의 태양 숭배 이교 축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의식은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사이의 투쟁을 상징하는 불을 통해 어둠 속의 악령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다. 뜨겁게 달궈진 원반은 추위를 몰아내며 다가오는 계절의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전통은 중세에 사순절 첫 번째 일요일에 정착되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간으로 끝나는 40일간의 단식 기간으로, 일요일과 성모영보 대축일에는 단식이 완화된다. 이 전통은 종종 2월에서 4월 사이 열리는 Buurefasnacht(옛 사육제)와 겹치며, 날씨가 허락할 경우 진행된다. 두 가지 기록이 이 풍습의 오래된 역사를 증명한다. 첫 번째는 742년 샤를마뉴 황제가 초가집 화재 방지를 위해 이를.. 스트라스부르의 주교 통치 역사 스트라스부르의 주교 통치: 종교와 정치가 맞닿은 역사스트라스부르는 4세기경부터 주교의 통치 아래 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 스트라스부르는 로마 제국의 일부였으며, 기독교의 확산과 함께 주교좌가 설립되었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주교들은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도시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세속적 권력자로 자리 잡았다. 주교의 세속적 권력중세 봉건제 하에서 스트라스부르 주교들은 종교적 권위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세속적 권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을 징수했으며, 군사적 보호와 법적 제재 권한을 가졌다. 이러한 통치는 도시의 발전과 함께 점진적으로 변화를 겪었고, 결국 시민들과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스트라스부르를 형성한 주요 주교들에르켄발트(Erchenbald, 재임.. 스트라스부르의 주교 아르망 가스통 막시밀리앙 드 로앙 스트라스부르의 주교, 아르망 가스통 막시밀리앙 드 로앙18세기 스트라스부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아르망 가스통 막시밀리앙 드 로앙(Armand Gaston Maximilien de Rohan)'이다. 로앙 가문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귀족 가문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프랑스 내 주요 성직자 직위를 차지해 왔다. 그중에서도 아르망 가스통 드 로앙은 1704년부터 1749년까지 스트라스부르의 주교를 지내며 도시의 문화와 정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로앙 주교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아르망 가스통 드 로앙은 단순한 성직자가 아니라, 스트라스부르의 문화적·건축적 발전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후원자로서 성당의 유지와 확장을 지원했으며, 도시의 중심부를 더.. 역사 속 자유도시, 스트라스부르 제국 자유도시, 황제와 제후 사이에서 자치를 쟁취한 도시들'제국 자유도시(독일어: Freie Reichsstadt)'라는 용어는 다소 모호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자치권을 확보한 도시를 가리킨다. 제국 내 도시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먼저 '제국도시(Reichsstadt)'는 황제에게 직접적으로 종속된 도시로, '제국직할(immediacy)' 지위를 가졌다. 반면, '자유도시(Freie Stadt)'는 공식적으로는 한 제후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점진적으로 자치권을 획득한 도시를 의미한다. 제국도시 vs. 자유도시, 그 차이는?원래 제국도시와 자유도시는 분명히 구별되는 개념이었다. 제국도시는 신성 로마 제국의 군주인 황제에게 직접 속한 도시로, 제국직할 지위..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 알자스의 발명품 10가지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자스는 전 세계에 발명을 남긴 발명품의 고장이다. 1450년 인쇄기부터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작은 LED까지 알자스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발명품 목록을 정리해 보았다. 1450년, Johannes Gutenberg(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탄생 1450년 독일의 Johannes Gutenberg(요하네스 구텐베르크)는 현대 인쇄술을 발명하고 최초로 금속활자 인쇄기를 도입했다. 그는 유럽 최초의 활판 인쇄 책인 42행 성경을 제작하고 라틴어 성경의 첫 번째 판본을 출판했다. 비록 구텐베르크가 독일인이었지만, 그의 혁신적인 발명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스트라스부르에는 그의 이름을 딴 광장과 동상이 세워져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1605년, Joha.. 리크위르(Riquewihr), 시간 속에 빛나는 포도원의 진주 리크위르(Riquewihr), 시간 속에 빛나는 포도원의 진주알자스(Alsace) 지역의 작은 마을 리크위르(Riquewihr)는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과 함께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그 역사는 격동의 순간들로 가득하다. 고대에서 중세로: 마을의 기원리크위르는 로마 시대부터 이미 사람이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6세기경, 프랑크족 지주였던 리코(Richo)가 이곳을 개간하며 정착지를 형성했다. 그의 이름과 영지였던 ‘리코빌라(Richovilla)’가 결합해 ‘리코빌라레(Richovilare)’로 불리다가, 세월이 흐르며 ‘리크위르(Riquewihr)’로 변했다. 리코는 혼자서.. 1944년 11월 23일, 스트라스부르의 해방 1944년 11월 23일, 스트라스부르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왔다.1944년 11월 23일,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꼭대기에는 자유의 상징인 삼색기가 펄럭였습니다. 4년간의 고통스러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찾아온 해방의 순간. 유럽 전역에서 몇 달 동안 이어진 치열한 전투 끝에, 르클레르 장군이 이끄는 제2기갑사단은 마침내 스트라스부르 해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은 르클레르 장군이 이끄는 제2기갑사단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이날 역사는 금빛 글자로 새겨졌고, 스트라스부르와 해방자들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었습니다. 으르렁거리는 탱크와 결의에 찬 제2기갑사단 병사들은 도시 거리로 쏟아져 들어가 점령군을 쫓아냈습니다. 4년이라는 긴 기다림과 고통 끝에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은 압도적인 기쁨으로 군.. 호엔하임-스트라스부르(Hoenheim-Strasbourg)의 잊혀진 유산 알자스 에나멜 산업의 빛과 그림자, 호엔하임-스트라스부르의 잊혀진 유산프랑스 알자스 지방, 호엔하임(Hoenheim) 레퓌블리크(République) 거리 82번지. 붉은 벽돌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이 자리에는 한때 알자스 에나멜 산업의 심장이라 불리던 '호엔하임-스트라스부르(Hoenheim-Strasbourg)'가 자리하고 있었다. 1923년, 옛 벽돌 공장 터에 설립된 이 회사는 알자스 지역의 독특한 에나멜 기술을 바탕으로 찬란한 역사를 써 내려갔다. 1926년, 뜨거운 가마에서 나온 첫 번째 광고판은 알자스 에나멜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1937년에는 월간 법랑판 생산량이 50톤에 달하며 전성기를 맞이했고, 1958년에는 샌드위치 패널을 최초로 생산하며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1960년, 새로운 .. 시간이 멈춘 듯 강변 자리한 베커 제분소(Grands-Moulins Becker) 시간을 멈춘 듯 강변 자리한 베커 제분소(Grands-Moulins Becker)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뇌호프(Neuhof) 지역, '라 강조(La Ganzau)'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는 한때 번성했던 제분소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베커(Becker) 제분소'다. 라인 토르튀(Rhin Tortu) 강이 유유히 흐르는 이곳은 예로부터 제분업이 활발했던 곳으로, 1860년 자크 베커(Jacques Becker)가 1650년에 지어진 오래된 밀가루 방앗간과 3개의 작은 공장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베커는 전통적인 물레방아와 맷돌 대신 수력 터빈을 설치하여 금속 실린더로 곡물을 분쇄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변.. 프레이츠(Freysz) 양조장의 짧았던 전성기 쾨니히쇼펜 맥주 역사의 한 페이지, 프레이츠 양조장의 짧았던 전성기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쾨니히쇼펜(Koenigshofen) 지역, 로맹(Romains) 길 48번지에는 한때 지역 맥주 산업의 한 축을 담당했던 프레이츠(Freysz) 양조장 겸 맥아 공장의 흔적이 남아있다. 1872년 설립된 이 양조장은 짧지만 강렬했던 역사를 뒤로하고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이 되었다. 프레이츠 양조장은 1922년, 프랑슈-콩테-알자스(Franche-Comté - Alsace) 그룹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약 10만 hl의 맥주를 생산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당시 프레이츠 맥주는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서 사랑받으며 쾨니히쇼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전 1 2 3 4 ··· 6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