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바나나(Blue Banana): 유럽 경제의 척추
서유럽과 중부유럽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도시화 회랑, 블루 바나나(Blue Banana). 이 지역은 유럽 대도시권(European Megalopolis) 또는 '리버풀-밀라노 축(Liverpool–Milan Axis)'이라고도 불리며, 약 1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경제 중심지다. 도시와 산업이 집중된 이 지역은 20세기 이후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유럽 경제를 이끄는 핵심 축이 되었다.
개념의 등장
블루 바나나라는 개념은 1989년, 프랑스 지리학자 '로제 브뤼네(Roger Brunet)'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그는 유럽의 ‘활성(active) 공간’과 ‘수동(passive) 공간’을 나누며, 잉글랜드 북부에서 이탈리아 북부까지 이어지는 산업 및 서비스 중심의 도시 회랑을 ‘유럽의 척추(European Backbone)’라고 설명했다. 이후 이 개념은 점차 발전하여 유럽 경제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블루 바나나’라는 명칭은 자크 셰레크(Jacques Chérèque)와, 프랑스 매체 '누벨 옵세르바퇴르(Nouvel Observateur)'의 기사에서 그래픽을 삽입한 한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블루’는 유럽 공동체(European Community) 깃발의 색 또는 이 지역의 산업 노동자들이 입던 블루칼라 작업복을 상징한다.
어디를 포함하나?
블루 바나나는 북서 잉글랜드에서 출발해 '영국 중부 지방과 대런던권(Greater London)'을 지나, 유럽 대도시권 릴(European Metropolis of Lille),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베네룩스) 지역의 '란트스타트(Randstad)'와 '브뤼셀(Brussels)'을 거쳐 독일의 라인란트(Rhineland), 남독일, 프랑스의 '알자스(Alsace)'와 '모젤(Moselle)' 지역을 포함한다. 이 영역은 서쪽으로는 스위스(바젤(Basel), 취리히(Zürich)), 오스트리아(포어아를베르크(Vorarlberg), 티롤(Tyrol)),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Milan), 토리노(Turin), 제노바(Genoa)까지 이어진다.
블루 바나나의 변천
1991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블루 바나나 개념을 검토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자들은 블루 바나나를 단순한 이론적 모델이 아니라, 유럽 내 지역 경쟁의 결과로 간주했다. 그들은 기존의 개념을 확장해 북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했다. 또한 파리를 제외했던 브뤼네의 초기 모델과 달리, 이후 연구에서는 파리도 블루 바나나의 일부로 간주하게 되었다.
한편, 유럽 경제권의 확장을 고려한 또 다른 모델로 ‘유럽의 오각형(European Pentagon)’이 등장했다. 이 모델은 파리, 런던, 함부르크, 뮌헨, 밀라노를 중심으로 형성되며, 베를린, 프라하, 트리에스테 등 동유럽으로의 발전 축을 포함한다.
블루 바나나의 변화: 확장인가, 이동인가?
최근 몇 년 동안 블루 바나나는 북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독일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북유럽 국가들이 경제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빠른 도시화로 인해 빈민가와 저소득 지역이 증가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들은 도시 재개발 정책을 적극 도입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영국의 '액션 포 시티즈(Action for Cities)', 프랑스의 '르콩케트 우르뱅(Reconquête Urbaine)', '독일의 슈태테바우포르데룽(Städtebauförderung)'이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도시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산업 중심지를 재정비하는 데 기여했다.
최근 연구(Capoani et al., 2023)에 따르면, 블루 바나나의 기존 중심부였던 영국과 북부 이탈리아가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도시화, 인프라, 생산성, 경쟁력 등의 지표를 비교 분석한 결과, 북부 이탈리아의 경제적 부진과 '브렉시트(Brexit)'로 인한 영국의 경제적 단절이 블루 바나나의 결속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블루 바나나는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유엔(UN)의 추산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세계 인구의 72%가 도시에 거주하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도시화 추세는 블루 바나나 지역의 지속적인 성장을 촉진하고 있으며, 기존의 축을 넘어 별 모양으로 뻗어나가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유럽 경제의 중심, 블루 바나나의 미래
현재 블루 바나나는 과거보다 더욱 광범위한 지역을 포함하며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에서 인구, 산업, 자본, 경제력이 가장 집중된 핵심 공간으로 남아 있다. 블루 바나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유럽 경제 지형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향후 도시화와 산업 발전이 계속되면서, 블루 바나나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