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우리는 어디까지 가보았을까? 파리, 로마, 런던은 물론이고 바르셀로나, 프라하, 부다페스트까지...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이미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아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유럽에는 아직 숨겨진 보석 같은 도시들이 많다. 화려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중세 도시, 예술과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작은 마을, 자연과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까지... 색다른 매력으로 가득한 유럽의 도시들을 소개한다. 익숙한 유럽을 벗어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설렘 가득한 여정을 시작해보자.
시칠리아, 카타니아(Catania)
카타니아의 성격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싶다면, 도시 바로 위에서 무겁게 드리운 폭발적인 산을 보면 된다. 바로 에트나(Etna)다. 이오니아해를 바라보는 이 동부 해안의 대학 도시는 강렬하고, 혼란스럽고, 또 아름답다. 도시 중심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가 있다. 18세기에 카타니아가 경쟁 도시 팔레르모(Palermo)를 능가하려는 야심으로 건설 붐을 일으키며 세운 탑과 광장들이 남아 있다. 그 중심이 되는 곳이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이다.
볼 만한 곳으로는 테아트로 마시모 벨리니(Teatro Massimo Bellini)가 있다. 이 극장은 벨리니(Bellini)의 오페라만큼이나 화려한데, 실제로 벨리니는 이 도시 출신이다. 하지만 가장 꼭 가봐야 할 곳은 역사적인 명소가 아니다. 바로 평일 아침마다 열리는 활기 넘치는 어시장이다. 시장 주변 레스토랑에 자리 잡고 앉아, 카타니아의 대표 요리인 ‘파스타 알라 노르마(pasta alla norma, 토마토와 가지를 곁들인 파스타)’를 맛보자. 당연히 이 요리의 이름도 벨리니의 오페라에서 따왔다.
도시 남쪽의 모래사장은 여름이면 비치클럽과 클럽 음악으로 북적이지만, 8월이 지나면 한산해진다. 하지만 바닷물은 초가을까지도 따뜻하게 유지된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lgrade)
최근 한 여행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도시 중 베오그라드는 최고의 가성비 여행지다. 숙박, 음식, 음료, 관광 및 교통비를 포함한 2인 2박 비용이 단 20만원(항공료 제외)로, 2위 크라쿠프(Krakow)보다 12% 저렴하다.베오그라드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아닐지 몰라도, 도나우(Danube)강과 사바(Sava)강이 합류하는 인상적인 지형, 몇몇 건축 보석 같은 건물과 기념비, 그리고 발칸 지역 최고의 나이트라이프를 갖고 있다.
올여름,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이 15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구석기 시대부터 20세기 예술까지 방대한 세르비아 역사를 다루며, 일요일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월요일 휴관). 현대미술박물관(Museum of Contemporary Art)도 작년 말 10년 만에 재개장했으며, 수요일에는 무료 입장(화요일 휴관)이다.
햇살 좋은 날이면, 현지인들은 ‘베오그라드의 바다’라 불리는 아다 치간리야(Ada Ciganlija)로 간다. 사바 강 남쪽의 이 숲이 우거진 반도에는 모래사장이 이어져 있으며, 하이킹과 카약 같은 야외 활동도 즐길 수 있다. 또, 강을 건너가 보면 1934년까지 별개의 도시였던 그림 같은 교외 지역 제문(Zemun)이 있다. 이곳의 구불구불한 자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리투아니아, 카우나스(Kaunas)
리투아니아의 제2도시인 카우나스는 2022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곳에는 수많은 박물관, 갤러리, 그리고 인상적인 건축물이 있다.
카우나스는 1920~1940년 동안 리투아니아의 수도였으며, 이 황금기는 수십 개의 모더니즘 건축물 유산을 남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웅장한 '예수 부활 교회(Christ’s Resurrection Church)'다. 하지만 이 도시가 20세기 건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네무나스(Nemunas)강과 네리스(Neris)강이 합류하는 산타카 공원(Santaka Park)에는 14세기에 세워진 성이 있으며, ‘하얀 백조’라 불리는 우아한 16세기 시청 건물도 있다.
가장 독특한 명소는 아마도 ‘악마 박물관(Devil’s Museum)’일 것이다. 이곳에는 70개국에서 온 3,000개의 악마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또, 미칼로유스 콘스탄티나스 치우를리오니스 국립미술관(Mikalojus Konstantinas Čiurlionis National Museum of Art)에서는 리투아니아의 선구적인 추상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카우나스에는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푸니쿨라(경사 철도)도 있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잘리아칼니스(Žaliakalnis)와 알렉소타스(Aleksotas) 두 개의 노선이 있으며, 이곳에서 도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구시가지 중심은 자갈길이 이어진 빌냐우스 거리(Vilniaus Street)로, 레스토랑과 바가 많다. 신시가지에서는 보행자 전용인 라이스베스 거리(Laisves Avenue)가 쇼핑 명소다.
슬로바키아, 코시체(Košice)
슬로바키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발음: 코-시체)로,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국경에 가까운 호르나트(Hornád) 강변에 위치해 있다. 고딕 양식부터 아르누보 양식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볼 수 있으며, 2013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이후 활기차고 독창적인 문화예술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학생 인구가 많아 젊고 생동감 넘치는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도시의 중심인 흐라브나 광장(Hlavná)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3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으며, 많은 건물이 카페와 바(Bar)로 운영되고 있어 여름이 끝날 때까지 활기가 넘친다.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주요 명소로는 노래하는 분수, 인상적인 고딕 양식의 성 엘리자베스 대성당(St Elisabeth Cathedral), 바로 옆에 위치한 성 우르반 타워(St Urban’s Tower), 중세 시대의 미클루쉬 감옥(Mikluš Prison) 등이 있다.
색다른 경험을 원한다면 가이드와 함께 오래된 스코다(Škoda) 자동차를 빌려 공산주의 시대의 흔적인 방공호와 마그네사이트 공장 등을 방문해 볼 수 있다. 또는 예술 애호가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도 있는데, 무자 호텔(Muza Hotel) 내부에 위치한 미할 갤러리(Mihal Gallery)에서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오리지널 작품 일부를 감상할 수 있다. 방문 전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이탈리아, 바리(Bari)
미로 같은 구시가지 ‘바리 베키아(Bari Vecchia)’와 고대 건축물이 가득한 바리는 늦여름의 햇살을 즐기며 느긋하게 걸어 다니기에 좋은 도시다. 11세기에 지어진 성 니콜라 대성당(Basilica di San Nicola), 12세기 건축된 바리 대성당(Cattedrale di Bari), 최근 복원된 테아트로 페트루첼리(Teatro Petruzzelli) 등은 꼭 방문해 볼 만하다.
신시가지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꽤 오래된 거리도 많다. 신시가지의 바둑판처럼 정렬된 거리 구조는 나폴리 왕이었던 조아킴 뮈라(Joachim Murat, 나폴레옹의 매제)에 의해 계획되었다. 보행자 전용 쇼핑 거리인 비아 아르지로(Via Argiro)와 스파라노(Sparano)가 유명하다. 바리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훌륭한 음식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한데, 바리 베키아에 숙소를 잡으면 이 모든 먹거리를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지만, 구시가지 특유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감수해야 한다.
도심에서도 모래와 자갈 해변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조금 더 이동하면 해변 휴양지인 폴리냐노 아 마레(Polignano a Mare)와 같은 아름다운 해변도 있다. 따뜻한 날씨가 10월까지 이어진다.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Podgorica)
과거 ‘티토그라드(Titograd)’ 혹은 ‘리브니차(Ribnica)’, ‘도클레아(Doclea)’, ‘제타(Zeta)’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포드고리차는 유럽에서 비교적 새로운 수도 중 하나지만, 기원은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양한 시대를 거쳐 온 만큼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흔적이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다. 처음 보면 작고 단조로워 보일 수 있지만, 차분히 둘러보면 활기찬 카페 문화, 훌륭한 현지 음식, 그리고 도심 속 산책로를 발견할 수 있다.
여름은 10월까지 이어지며, 아드리아 해가 불과 50km 거리에 있어 당일치기 해변 여행도 가능하다. 또한, 아름다운 산악 풍경이 가까워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기에도 좋다.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한 그르노블은 보통 하이킹(여름)이나 스키(겨울) 여행의 경유지로 여겨지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다.
그르노블 미술관(Musée de Grenoble)에는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호안 미로(Joan Miró) 등의 세계적인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도심에서 2km 떨어진 ‘마가쟁(Magasin)’은 현대 미술 전시 공간으로, 건물 자체가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의 설계로 지어졌다.
대학생 인구가 많아 저렴하면서도 수준 높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다. 가을에도 기온이 온화한 편이라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기기 좋다. ‘로 차페라노(Lo Zafferano)’는 겉보기에는 소박하지만, 프랑스-이탈리아 퀴진으로 명성이 높다. 활기찬 밤 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오귀스트 가셰 거리(Rue Auguste Gaché)에 위치한 학생들이 자주 찾는 바 ‘르 토르드 보요(Le Tord Boyaud)’를 추천한다.
또한, 1970년대에 만들어진 ‘버블(Bubbles)’이라 불리는 원형 케이블카를 타고 라 바스티유(La Bastille) 언덕 정상에 오르면, 도시와 알프스의 아름다운 파노라마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 오흐리드(Ohrid)
오흐리드는 바다와 접하지 않는 마케도니아의 '해변 도시'다. 구시가는 언덕을 따라 오흐리드 호수(Lake Ohrid)까지 내려가며, 산책로와 해변이 이어진다. 자갈길로 된 거리는 교회와 전통 가옥들로 가득 차 있으며, 언덕 정상에는 폐허가 된 사무일 요새(Samuil Fortress)가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2,000년 된 원형극장과 호수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의 13세기 성 요반 카네오 교회(St Jovan Kaneo Church) 등 볼거리가 많다.
도시와 호숫가를 둘러본 후에는 배를 타고 성 나움 수도원(St Naum Monastery)과 인근의 샘을 방문해보거나, 뼈의 만(Bay of Bones)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수중 유적지를 탐험할 수 있다. 또는 갈리치차 국립공원(Galičica National Park)에서 하이킹을 즐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그리스, 프레베자(Preveza)
고풍스러운 자갈길과 아름다운 해변을 지닌 프레베자는 많은 여행자들이 그냥 지나쳐 가는 곳이지만, 충분히 들러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리스 북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는 암브라키코스 만(Ambracian Gulf) 입구에 자리 잡고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랜 역사의 흔적 덕분에 다채로운 건축 양식을 볼 수 있으며, 19세기 초에 세워진 판토크라토르 성(Kastro Pantokrator), 베네치아 및 오스만 시대의 유적, 내부가 온통 그림으로 장식된 아기오스 아타나시오스 교회(Agios Athanasios) 등이 대표적이다.
도시에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유럽에서 가장 긴 모래 해변 중 하나인 25km 길이의 모놀리티 해변(Monolithi Beach)이 나온다. 해변에는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어 숙박도 가능하다(campingmonolithi.gr). 해산물을 맛보고 싶다면 해변 근처의 타베르나 오 카익시스(Taverna O Kaixis)나, 조금 더 고급스러운 암브로시오스(Amvrosios)를 추천한다.
프레베자에서는 당일치기 여행 옵션도 많다. 자연을 좋아한다면 아케론 강 협곡(Acheron River Canyon)과 암브라키코스 습지(Amvrakikos Wetlands)에서 펠리컨을 관찰할 수 있다. 고대 유적에 관심이 있다면, 도시에서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니코폴리스(Nikopolis)의 모자이크 유적과 오데온을 방문하거나, 폐허가 된 고대 도시 카소페(Cassope)로 향해도 좋다.
크로아티아, 풀라(Pula)
이스트리아(Istria) 반도의 남쪽 끝에 위치한 풀라는 로마 시대 유적이 인상적인 도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1세기에 지어진 원형극장으로, 이 외에도 아우구스투스 신전(Temple of Augustus)과 세르기우스 개선문(Arch of the Sergii) 등이 남아 있다.
현대적인 볼거리로는 울야닉 조선소(Uljanik Shipyard)의 크레인에 조명이 들어오는 '라이팅 자이언츠(Lighting Giants)' 조명 쇼가 있다.
도심에는 해변이 없지만, 베루델라 반도(Verudela Peninsula)까지 버스로 짧게 이동하면 해변을 만날 수 있다. 또는 파자나(Fažana)에서 배를 타고 자동차가 없는 벨리 브리유(Veli Brijun) 섬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브리유니 제도(Brijuni Islands) 중 하나인 이 섬은 잘 정돈된 공원과 사슴, 공작새가 어우러진 자연 경관이 인상적이다. 19세기 초에는 건강 휴양지로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도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