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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ISM

스트라스부르의 숨은 보석, 로한 궁전(Palais Ro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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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웅장한 위용에 가려져 있지만, 로한 궁전(Palais Rohan)은 강변 부두를 장악하는 인상적인 실루엣으로 도시의 중요한 건축 유산 중 하나다. 이 궁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프랑스와 알자스 지역의 역사가 교차하는 공간으로, 지난 세기 동안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로한 궁전의 모습

 

 

 

가톨릭 주교들의 귀환과 새로운 궁전 (1704-1744)

1515년 이후 가톨릭 개혁으로 스트라스부르는 개신교 도시가 되었고, 카톨릭 주교들은 도시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30년 전쟁이 끝난 후, 알자스가 프랑스에 편입되면서 다시 가톨릭 주교들이 돌아왔다. 1704년, 아르망-가스통 드 로한(Armand-Gaston de Rohan)이 스트라스부르 주교가 되면서 도시의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다.

 

아르망-가스통 드 로한은 루이 14세(Louis XIV)와 그의 어머니 안 드 로한(Anne de Rohan) 사이의 특별한 관계 덕분에 정치적 후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생시몽(Saint-Simon)은 이를 두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왕 덕분에 출세한 공작"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 덕에 그는 주교직뿐만 아니라 프랑스 대사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아르망-가스통 드 로한(Armand-Gaston de Rohan) 추기경 초상화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궁전을 원했다. 파리에는 이미 왕의 건축가 로베르 드 코트(Robert de Cotte)가 설계한 '로한 스트라스부르 궁전(hôtel de Rohan Strasbourg)'이 있었고, 그는 같은 건축가에게 스트라스부르 궁전의 설계를 맡겼다. 궁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가졌다. 첫째, 가톨릭 교회의 스트라스부르 귀환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둘째, 새롭게 프랑스 왕국에 편입된 알자스 지역에 프랑스식 사치와 세련됨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로한 궁전(Palais Rohan)의 1층 평면도

 

 

 

 

로한 궁전, 스트라스부르의 보석이 되다 (1744-1870)

로한 궁전은 완공과 동시에 도시의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웅장한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의 정교한 장식과 조화로운 공간 구성이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했다. 주교는 1층을 사용하고, 그의 직원들은 위층에서 생활했다.

 

 



1744년, 로한 궁전의 위상은 루이 15세의 방문으로 더욱 높아졌다. 5일 동안 이어진 그의 체류는 스트라스부르가 왕을 위해 준비한 화려한 축제의 장이 되었고, 연회, 행진, 불꽃놀이, 수상 공연이 이어졌다. 이 장면들은 당시 제작된 판화 앨범을 통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J-M Weiss가 그린 '1747년 스트라스부르 시에서 왕의 회복을 기념하여 개최한 축제의 재현'
J-M Weiss가 그린 '1747년 스트라스부르 시에서 왕의 회복을 기념하여 개최한 축제의 재현'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며 궁전의 운명도 바뀌었다. 교회의 재산이 몰수되면서 로한 주교는 도시를 떠났고, 스트라스부르 시는 궁전을 공동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유지비 부담으로 인해 나폴레옹에게 헌납했다. 이후 궁전은 제국의 거처가 되었고, 나폴레옹의 첫 번째 아내 조제핀 황후는 1805년과 1809년 이곳에서 긴 체류를 하며 애정을 보였다. 그녀의 스트라스부르 방문은 장-앙투안 로랑(Jean-Antoine Laurent)의 그림 속에도 남아 있다.

 

 



나폴레옹의 두 번째 아내 마리-루이즈 황후 역시 1810년에 이곳에 머물렀다. 그러나 제국이 몰락한 후, 궁전은 왕실의 관심을 잃었고, 복고 왕정 시기를 거쳐 결국 스트라스부르 시로 반환되었다. 이후 제2제국의 붕괴와 함께 1870년 독일 점령이 시작되면서 궁전은 더 이상 거주 공간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Jean-Antoine Laurent의 '스트라스부르의 조세핀 황후 초상' 1806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다 (19세기 말~현재)

19세기 말부터 로한 궁전은 점차 박물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889년, 미술관이 설치되었고, 지하에는 고고학 박물관이 개관했다. 1918년에는 장식 미술관이 추가되면서 점점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4년 8월 11일 미군의 폭격으로 궁전 일부가 크게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이후 긴 복원 작업 끝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복원을 통해 마지막 남은 손상된 공간까지 회복되었고, 현재는 스트라스부르 시민과 방문객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재가 되었다.

 

1944년 폭격 후의 로한 궁전. 스트라스부르 박물관 사진 자료

 

 

 

오늘날 로한 궁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한때 주교의 거처이자 제국의 궁전이었던 이곳은 이제 미술, 고고학, 장식 미술을 아우르는 박물관으로 자리 잡았다.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대성당과 함께 꼭 들러야 할 역사적 명소다.

 

 

 

 

Palais Rohan

2 place du Château 67000 Strasbourg
Tel : +33 (0)3 68 98 50 00
https://www.musees.strasbourg.eu/decouvrir

 

Découvrir - Musées de Strasbourg

Musée Tomi Ungerer – Centre international de l’Illustration

www.musees.strasbourg.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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