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인들의 미국행 이민
알자스(Alsace) 지역 사람들의 미국 이민 역사는 19세기부터 시작된 주요 이민 물결로,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에 위치한 알자스가 유럽 내 정치적·경제적 변동 속에서 겪었던 여러 환경적 요인들이 이민을 촉진시켰다. 특히 경제적 압박, 사회적 변화, 그리고 정치적 상황이 알자스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신세계로 떠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이민의 주요 원인
19세기 알자스는 독특한 지리적 위치 덕분에 문화적 다양성과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졌으나, 여러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산업혁명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을 강타하면서 전통적 농업 기반의 사회였던 알자스도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농업 위기와 산업화 경쟁은 지역 농민과 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했고, 이러한 경제적 문제는 알자스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를 고민하게 했다.
여기에 더해 알자스는 프랑스와 독일의 영토 분쟁 속에서 정치적 불안을 겪기도 했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지역이 독일 제국의 영토로 병합되면서 지역 주민들 중 일부는 독일 지배를 피해 프랑스로 이동하거나, 아예 신세계로 떠나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라인강을 건너 떠난 이민의 물결
알자스인의 미국 이민은 여러 차례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기록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 1817년 : 주로 알자스 남부 콜마르(Colmar) 지역의 농민과 노동자들이 떠났다.
- 1828-1837년 : 알자스 북부의 비셈부르(Wissembourg)와 사베른(Saverne) 지역 주민들이 많이 떠났다.
- 1838년 이후 : 미국 이민 경향이 알자스 전역으로 확산되어 농업과 산업의 위기를 겪고 있던 모든 계층에서 이민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많은 알자스인들이 신세계를 향해 떠나게 되었고, 일부는 남미로 가기도 했다.
카스트로빌과 다른 도시들
오늘날 알자스인들이 세운 미국의 도시로 가장 잘 알려진 곳으로는 카스트로빌(Castroville)이다. 이곳은 텍사스의 프랑스 총영사였던 앙리 카스트로(Henri Castro)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창립한 도시로, 뮐루즈(Mulhouse) 출신의 알자스인들과 이웃한 독일 바덴 지역 출신의 주민들로 채워졌다. 카스트로빌이 설립된 첫 세기 동안, 이곳에서는 가정과 상점, 선술집에서 알자스어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카스트로빌에는 '작은 알자스'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어 알자스식 가옥들이 있으며, 주민들 중 일부는 여전히 알자스인의 뿌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텍사스의 알자스 댄서(Alsatian Dancers of Texas)'라는 무용단이 지역의 알자스 문화를 기리고 있다.
'미국의 스트라스부르'와 그 외 도시들
물론 카스트로빌 외에도 알자스인들이 창립하거나 크게 발전시킨 미국 도시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의 스트라스부르(Strasburg)를 들 수 있다. 또 콜로라도(Colorado)에도 스트라스부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는 캔자스 퍼시픽 철도의 책임자였던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마를린 우릭(Marlin Uhrich)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롱 그로브(Long Grove)라는 마을은 설립자의 고향을 기리기 위해 무터숄츠(Muttersholz)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많은 개척자들 중에는 알자스에서 온 아미시(Amish) 공동체뿐만 아니라 감리교인(Methodist), 그리고 대평원을 향한 모험을 꿈꾸던 이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