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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프랑스에서 정말 와인 소비가 쇠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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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와인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이 언론과 대중 사이에서 종종 회자된다. 세계적으로 소비량이 줄고 있다는 보도, 그리고 젊은 세대의 무관심을 근거로 한 비관론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과연 사실일까? 




 

수치로 본 와인의 현재

프랑스 소비자들의 음주 트렌드를 추적해온 '소와인(SOWINE)'의 설문조사 결과는 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2023년 조사에서는 맥주가 선호도 1위를 차지했지만, 2024년에는 다시 와인이 1위로 복귀했다. 2025년 초 공개된 최신 조사에서도 그 순위는 유지되었으며, 와인은 여전히 프랑스인의 가장 선호하는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보다 국제적인 시각에서는 '국제포도·와인기구(OIV)'의 데이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기구는 최근 수십 년간 와인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2024년은 기록적으로 낮은 생산량을 보인 해였다. 전 세계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 칠레, 남아프리카 등 남반구 주요 생산국들까지 줄줄이 수확량 감소를 겪었고, 이는 기후변화의 직접적 결과였다. 기후 불안정성, 농지 축소, 생산자의 고령화는 와인 산업의 구조를 흔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쇠퇴’라기보다, 와인을 둘러싼 환경과 소비 행태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혀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상 와인’의 쇠퇴

프랑스에서 와인의 소비가 줄었다는 말은, 사실상 일상 소비용 와인에 해당된다. 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에는 프랑스인이 연간 평균 115리터의 와인을 마셨다. 현재는 17리터 수준이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급격한 감소지만, 배경에는 공공 보건 의식의 변화가 있었다. 예컨대 1956년까지는 14세 미만 아동도 학교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었고, 3도 이하의 저도수 와인은 어린이에게 제공되기도 했다. 이후 정부의 금주 캠페인과 건강 중심의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며, 일상 와인의 자리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식생활과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고 보는 이유다.
 

 
 
 

고급 와인의 부상

일상 와인의 퇴조는 동시에 고급 와인의 부상을 의미한다. 프랑스 통계청 기준 ‘AOC 표시 와인’으로 분류되는 고급 와인의 1인당 소비는 1960년대 12.5리터에서 최근에는 18.9리터로 증가했다. 샴페인 소비도 1.1리터에서 4.5리터로 증가했다. 반면, 맥주와 시드르, 증류주의 소비는 동일 기간 동안 감소하거나 정체되었다.
더 주목할 점은 가계 예산 배분의 변화다. 1961년에는 와인 예산 중 36.5%가 일상 와인에 사용되었지만, 2017년에는 5.3% 수준으로 줄었다. 반대로 고급 와인에는 5.9%에서 13.5%로 증가했다. ‘덜 마시되, 더 잘 마시자’는 소비 철학이 정착된 셈이다. 고급 와인의 품질은 그 어느 때보다 향상됐고, 와인 애호가들은 더 깊이 있는 취향과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와인은 단순한 주류를 넘어 문화적 자산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그 맥락 속에서 오히려 소비의 의미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소비의 지형 변화

와인의 소비는 더 이상 농촌의 일상 풍경만이 아니다. 도시 중심, 전문직 종사자가 밀집한 대도시일수록 와인 소비 비중이 높다. 예를들면, 프랑스 동부의 그랑테스트(Grand Est) 지역은 프랑스 평균보다 샴페인 소비가 높고, 파리, 뉴욕, 홍콩 같은 국제도시 역시 와인 시장의 주요 거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 '아이딜와인(iDealwine)'은 뉴욕 사무소를 개설했고, 최근에는 뉴질랜드로 배송 서비스를 확장하며 수출국을 60개국 이상으로 늘렸다. 이는 전통적인 와인 문화권 바깥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스타일과 품종의 진화

소와인 2025년 설문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63%는 식사와 함께 와인을 즐긴다. 선호 품종은 샤르도네(Chardonnay)가 1위(39%), 피노 누아(Pinot Noir)가 2위(28%), 메를로(Merlot)가 3위(27%)로 나타났다. 특히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를 넘어 산세르(Sancerre), 쥐라(Jura), 알자스(Alsace), 심지어 일본의 '다카히코 소가(Takahiko Soga)' 와이너리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본 다카히코 소가(Takahiko Soga)의 피노 누아

 
부드럽고 섬세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네비올로(Nebbiolo) 같은 품종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의 바롤로(Barolo)처럼 탄닌과 산미의 균형이 뛰어난 와인들이 애호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는 단순한 품종 선택을 넘어, 와인의 스타일과 철학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

 
 
 

미래는 어디로?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다. 아이딜와인 2024 바로미터에 따르면, 경매를 통한 와인 거래는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고급 와인 시장은 활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새로운 소비자층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와인은 단지 마시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공유하고, 배우는 문화다. 그리고 이 문화는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섬세하고, 깊이 있고,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와인의 ‘종말’이 아니라 ‘재편’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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