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날씨 좋은 날 시타델 공원에 한 번 찾아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도,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기에도, 연인과 산책을 하기에도, 친구들과 가벼운 술 한 잔 하기에도 이상적인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의 안식처 시타델 공원.
그 이름의 뜻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과거 성벽으로 둘러쌓여져 있던 이곳은 오늘날 몇 개의 성벽 흔적만이 남아서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공원 주변에 남은 성벽의 흔적으로 이 '요새'의 규모를 낮은 수준으로 가늠하지만, 1870년 보불전쟁 이전에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큰 규모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스트라스부르 도시 전체를 둘러쌓고 있는 성곽의 일부로서 시타델 공원의 성벽이 존재했었다.
1681년 9월 30일에 스트라스부르가 프랑스에 합병되었을 때, 이 지역은 라인강 방향으로 방어를 하는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사실상 많은 연구와 고민의 시간 없이 무작정 도시의 성벽이 이곳까지 길게 확장될 수 밖에 없었다.
이 시타델 조성 당시에는 성곽에 두 개의 문이 있었지만, 현재는 한 곳만 남아서 유지되고 있다.
보방(Vauban)의 계획
16-17세기 루이14세의 총애를 받으며 당시 프랑스 북부의 요새 설계를 도맡아서 했던 보방(Sébastien Le Prestre de Vauban)이 또 한 번 이 시타델의 계획을 맡았다.
보방은 프랑스 왕국 부르봉 왕조 시대의 귀족, 장군, 엔지니어이다. 특히 루이 14세 치세 동안에 프랑스 북동부 국경에 많은 요새를 축조하여 프랑스군이 전략적으로 우세를 가지게 하는데에 큰 역할했다. 특이한 생김새로 유명한 별모양 요새(star fort)를 고안해낸 인물처럼 알려져 있어 별 모양 요새를 '보방식 요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보방(Vauban)의 별모양 요새가 시타델 계획에 사용되었다.
보불전쟁 이후
이 공원 주변의 성곽은 보불전쟁 당시 '스트라스부르 포위 공격(1870년 8월 16일부터 9월 28일까지)' 기간에 프로이센의 포격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부분은 1896년 초에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사라져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