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빈티지, 보르도의 새 지형도 — 주목할 10개 샤토의 부상
2022년, 프랑스 보르도 와인계에 전환점이 된 한 해가 있었다. 전통과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이 지역에서, 놀랍도록 개성 있는 와인들이 속속 등장하며 판도를 흔들었다. 생테밀리옹(Saint-Émilion), 마르고(Margaux), 생테스테프(Saint-Estèphe) 등 각 지역의 샤토들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새로운 리더십을 확립했거나, 기존의 명성을 다시금 증명해냈다.
보르도는 오래전부터 위계와 전통이 강고하게 자리잡은 와인 생산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토양 관리와 양조 기술의 꾸준한 혁신을 통해, 시대의 미각에 부합하는 새로운 와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2022년은 특히 유례없이 강렬한 기후 조건 속에서 포도들이 농밀한 개성과 복합미를 획득한 해였다. 이제 그 해의 와인들이 병입되어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들은 이 빈티지가 장기적으로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는 2022년산 보르도 와인 350여 종을 시음한 끝에, 가장 인상적인 변화를 보여준 10개의 샤토를 선정했다. 이 리스트에는 가격대가 30유로 수준인 접근 가능한 와인부터 수백 유로를 호가하는 하이엔드 와인까지 폭넓게 포진돼 있다. 이 와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논쟁의 여지 없는 품질'이다. 다음은 해당 리스트에 포함된 주요 샤토와, 각 와인에 대한 상세한 테이스팅 노트다.

샤토 레방질 2022 (Château L’Évangile 2022)
📍 포므롤(Pomerol) | 💰 320유로 | ⭐ 96점
고요하면서도 품위 있는 향이 먼저 밀려오고, 입 안에는 응축된 과즙감이 터지듯 넘친다. 부드러운 꽃 향과 생동감 있는 구조, 그 위를 덮는 듯한 염분의 파도가 독특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마지막은 카카오의 미묘한 쓴맛과 대서양의 짠내를 연상케 하는 염미가 조화를 이루며 긴 여운을 남긴다.
샤토 메네이 2022 (Château Meyney 2022)
📍 생테스테프(Saint-Estèphe) | 💰 32유로 | ⭐ 96점
짙고 어두운 과일향이 기저를 이루며, 크랜베리와 장미의 향기가 경쾌하게 터져 나온다. 입 안에서는 유려하고 관능적인 감촉이 우아한 균형을 이룬다. 완전히 익은 과실과 미세한 카카오 풍미가 층층이 쌓이며 피니시는 길고 섬세하다.
샤토 드 페랑 2022 (Château de Ferrand 2022)
📍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Saint-Émilion grand cru) | 💰 35유로 | ⭐ 95점
신선한 검은 과일과 흑연의 향이 절제된 세련미와 함께 펼쳐진다. 입 안에서는 매끄럽고 밀착력 있는 타닌이 구조를 견고하게 만들고, 카카오의 고소한 뉘앙스가 피니시를 은근히 감싼다.
샤토 라 도미니크 2022 (Château la Dominique 2022)
📍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Saint-Émilion grand cru) | 💰 50유로 | ⭐ 94점
허브와 꽃의 향기가 조화를 이루며 투명하게 퍼진다. 입 안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질감과 농밀한 풍미가 어우러지며, 마무리는 섬세한 미네랄리티가 중심을 잡는다.
샤토 깡떼메를 2022 (Château Cantemerle 2022)
📍 오-메독(Haut-Médoc) | 💰 34유로 | ⭐ 93점
잘 익은 과일의 풍미가 힘 있게 뻗으며 활력을 전달한다. 부드러운 타닌과 섬세한 꽃 향이 유연하게 어우러지고, 깊고 견고한 피니시가 전체를 단단히 묶는다.
샤토 드 페즈 2022 (Château de Pez 2022)
📍 생테스테프(Saint-Estèphe) | 💰 37유로 | ⭐ 93점
보랏빛의 다양한 향조가 복합적으로 퍼지며 블랙베리와 꽃의 조합이 매혹적인 조화를 이룬다. 부드러운 질감 위에 얹힌 단단한 구조가 오히려 이 와인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샤토 트롱쿠아 2022 (Château Tronquoy 2022)
📍 생테스테프(Saint-Estèphe) | 💰 30유로 | ⭐ 93점
완숙한 과일과 꿀풀(Chèvrefeuille) 향이 화려하게 교차하며 첫인상을 만든다. 크리미한 질감과 공기처럼 가벼운 산도가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마무리는 향신료의 잔향으로 고요히 끝맺는다.
이외에도 샤토 벨에르 모낭쥬(Château Bélair Monange), 샤토 드 페즈(Château de Pez)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2022년 빈티지에서 그 진가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특히 샤토 벨에르 모낭쥬는 2012년 두 개의 유서 깊은 샤토 — *샤토 벨에르(Château Bélair)*와 샤토 막들렌(Château Magdelaine) — 의 합병으로 탄생한 이후, 생테밀리옹의 중흥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2022년 빈티지는 단순한 기후의 결과물이 아니다. 각 샤토가 수년간 이어온 토양 연구와 포도밭 관리, 양조 기술의 집약된 결과물이다.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10개 샤토는,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선 상징적 존재다. 오늘날 보르도는 더 이상 고전의 무게에만 기대지 않는다. 그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스스로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