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식 바게트, 프랑스 빵문화의 천재성
프랑스 문화의 풍경을 묘사할 때 빠지지 않는 이미지가 있다. 베레모를 눌러쓴 남성이 바게트 하나를 겨드랑이에 낀 채 거리를 걷는 모습이다. 어딘가 진부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 전형적 풍경은 그 자체로 ‘프랑스다움(Franchouillard)’을 체현한다. 매일 아침, 프랑스 전역의 2만8000개에 달하는 동네 빵집에서 3천만 개의 바게트가 팔려나가는 현실을 보면, 바게트가 단순한 식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상징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중에서도 ‘전통식 바게트(baguette tradition)’는 프랑스 베이커리의 장인정신과 미식 철학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산물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전통’의 역사는 생각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바게트, 그 불확실한 기원
바게트의 정확한 기원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가장 오래된 설화는 나폴레옹 대군의 병사들이 빵을 휴대하기 쉽게 하기 위해 원형 빵을 길쭉한 형태로 바꿨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설은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출신의 제빵사 오귀스트 장(Auguste Zang)이 파리에서 ‘비엔나식 빵’을 판매하면서 바게트가 대중화됐다고 본다. 가장 실질적인 가설은 1919년 제정된 노동법으로, 밤 10시에서 새벽 4시까지 제빵 노동이 금지되면서, 숙성이 간편한 길쭉한 빵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흥미롭게도 ‘바게트’라는 단어 자체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0년 8월 4일자 《피가로(Figaro)》 지면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부유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알자스에서의 바게트, 그리고 빵집의 위기
알자스(Alsace) 지역에 바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1950년대까지는 큼직한 둥근 빵이 주류였고, 바게트는 1960년대에 들어서야 자리를 잡았다. 특히 독일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바게트 수요는 더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프랑스 전역의 전통 빵집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침체기를 맞았다. 대형 유통체인과 공장제 빵의 공세에 밀려 수많은 동네 제빵소가 문을 닫았다. 외형이나 서비스 면에서도 경쟁력을 잃었고, 빵에 대한 자부심조차 흔들렸다. 그러나 장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직능단체를 중심으로 조직력을 다졌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진짜 프랑스 빵’을 다시 빚기 시작했다.
이후 고품질 생산 원칙과 전통 제법의 복원을 기치로 내건 제빵사들이 주도한 개혁은, 1993년 ‘프랑스 전통 빵 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법은 무첨가물, 현장 발효·형성·굽기 등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1995년엔 ‘라파랭 법령(Décret Raffarin)’이 이를 더욱 강화했다. 이러한 규제는 전통 바게트를 보호하고, 장인정신을 지켜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게트의 르네상스, 그리고 EGAST 2022
이런 흐름 속에서, 알자스 지역의 제빵산업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00년대 들어 수많은 신규 제과점과 확장 프로젝트가 이어졌고, ‘샌드위치화’와 ‘스낵화’ 전략을 통해 바게트의 용도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그 정점을 보여준 무대가 2022년 열린 식품·외식 박람회 ‘에가스트(EGAST)’였다.
당초 2020년 예정이었던 행사는 팬데믹으로 연기된 끝에 2022년 재개되었고, 제빵·제과 분야는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역으로 부상했다. 알자스 제빵연합 회장 마테른 하우크(Materne Hauck)와 스트라스부르 제과협회 회장 호세 아로요(José Arroyo)의 주도로, 총 4개 부문의 경연대회가 열렸다. 이 중 가장 치열했던 종목은 단연 ‘전통식 바게트 그랑테스트(Grand Est) 지역 대회’였다.
250g의 완벽, 바게트 경연장의 풍경
이 대회에는 프랑스 동부 10개 지역 예선을 통과한 21세 이상 제빵인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6시간 동안, 전통 바게트 기준에 맞는 40개의 작품을 구워내야 했다. 길이 50cm, 소금 18g 이하, 첨가물 무사용, 무가루 코팅, 5개의 정밀한 칼집(grignes)까지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심사위원단은 6명의 전문가로 구성되었으며, 그중 세 명은 프랑스 최고 장인(Meilleur Ouvrier de France) 칭호를 보유한 인물들이었다. 심사 항목은 외형, 크러스트의 색과 바삭함, 속살의 질감과 공기층, 향과 맛, 그리고 씹는 감촉이었다.
심사위원장 장클로드 일티스(Jean-Claude Iltis)는 바게트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게트는 시각부터 감각을 자극해야 한다. 곱고 균형 잡힌 외형, 얇고 고소한 크러스트, 촘촘하지만 탄력 있는 미색의 속살. 오븐에서 나올 때 바게트는 노래하듯 소리를 낸다.”
빵에도 철학이 있다
‘좋은 빵은 그 자체로 철학’이라는 말을 남긴 바게트 연구의 권위자 스티븐 카플란(Steven Kaplan)은 빵을 와인에 비유한다. 빵에도 ‘영혼’이 있으며, 향기와 맛이 어우러지는 ‘플래이버(flaveur)’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바게트를 한 조각 베어물 때 입 안에 퍼지는 구수한 곡물향, 은은한 꿀 냄새, 그리고 잔잔한 바삭거림. 이 감각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체험이다.
빵의 가격과 가치는 다르다
이번 대회에서 최종 우승은 마른(Marne) 지역의 파트릭 바예(Patrick Baillet)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행사장 밖에서는 또 다른 논쟁이 불거졌다. 프랑스 대형 유통업체 르클레르(Leclerc)가 내놓은 ‘29센트 바게트’가 그 주인공이다. 호세 아로요 회장은 이에 대해 “르클레르 바게트는 발효 시간이 짧아 혈당지수가 95%에 이른다. 반면 전통 바게트는 12~18시간의 긴 발효를 거쳐 혈당지수가 45%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밀 수급 불안은, 향후 원재료 가격 상승이라는 더 큰 위협을 예고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군중이 국왕을 ‘빵집 주인’, 왕비를 ‘빵집 마님’이라 불렀던 것은, 빵이 프랑스인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바게트는 지금도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바게트는 더 이상 단순한 빵이 아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역사이자 문화이며, 장인정신의 산물이다.
‘진짜’ 바게트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손끝에서 매일 새벽,
프랑스의 정체성이 구워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