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페리티프(apéritif)란?
한국사람들이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문화 중에 하나는 아페리티프(apéritif) 문화다. 아페리티프 '식사 전에 즐기는 술'이다. 아페리티프(apéritif) 또는 줄여서 아페로(apéro)로 불리는 프랑스의 식전주는 식사 전에 간단한 핑거푸드(과일, 채소, 올리브, 소시송, 비스킷 등)와 함께 식욕을 돋우고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곁들이는 술이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신경 쓴 자리라면 식사 한두 시간 전부터 아페리티프를 시작한다. 물론 점심때도 예외는 아니다. 점심 식사가 1시에 시작할 경우 11시 좀 넘어서부터 아페리티프를 시작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식사를 먼저 주문해 놓고 음식이 나올 동안 느긋하게 아페리티프를 즐긴다. 사실 프랑스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격식을 차려서 아페리티프 - 전체 - 메인 요리 - 치즈 - 후식을 모두 챙겨 먹지는 않는다. 친구들끼리 가벼운 자리를 마련할 때는 식사 대신 안주로 배를 채우기도 하는데, 이를 아페리티프 디나토와(apéritif dinatoire) 또는 줄여서 아페로 디네(apéro diner)라고 부른다.
아페리티프 문화의 시작
아페리티프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전역에서 오랫동안 발달한 문화이다. 여러 가지 설 중에서도 근대에 와서는 1846년 프랑스 화학자 조셉 뒤보네(Joseph Dubonnet)가 와인에 퀴닌(quinine)을 물질을 첨가하여 만든 술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19세기 중반, 전쟁에 열중이었던 프랑스는 남아프리카 등지에서 프랑스 군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말라리아로 고통받고 있었다. 당시 우연히도 화학자 조셉 뒤보네가 만든 술에 첨가된 퀴닌이 말라리아에 효과가 있다고 밝혀지게 되면서 그의 아내가 식사 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남편이 만든 술을 권했던 것이 아페리티프의 시작이라고 한다. 참고로 조셉 뒤보네가 처음 만들었을 당시의 술은 어마어마하게 써서 먹기 힘들었기에, 여기에 쓴맛을 가릴 수 있는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를 섞어서 마셨다고 한다.
또 다른 문서에서는 1786년 이탈리아에서 안토니오 베네데토 카르파노(Antonio Benedetto Carfano)가 발명한 베르무트(Vermouth)가 현재 아페리티프의 조상이라고 한다. 베르무트는 화이트 또는 레드 와인에 오드비(l'eau de vie, 센 도수의 알콜)와 카모마일, 계피, 오렌지, 팀, 바닐라 등 각종 향신료를 첨가하여 만든 16-18도 정도의 도수를 가진 알콜이다. 베르무트의 종류에 따라 무려 30개 이상의 향신료를 첨가하기도 한다. 아페리티프의 긴 역사만큼 오늘날 마시는 아페리티프의 종류도 다양하다.
아페리티프의 종류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술을 아페리티프로 즐긴다. 식사와 곁들이는 술 - 예를 들어 볼륨감 있는 화이트 와인이나 레드 와인 같은 것 - 외에는 다 아페리티프로 즐긴다고 해도 무방하다. 전통적으로 나이 든 프랑스 남성들은 아니스(anis)라는 허브가 베이스인 술을 많이 마신다. 특유의 쓴맛과 향 때문에 우리나라 시골 할아버지들이 마시는 약주스럽다. 빈센트 반 고흐가 즐겨 마셨다는 압생트라는 초록색 술의 그 미끄덩하고 화한 맛의 주범이 바로 아니스다. 압생트 외에도 리카흐, 파스티스 51, 뒤발 같은 브랜드가 아니스를 베이스로 한 술을 만든다. 다른 프랑스 남성들은 위스키나 코냑, 진, 보드카 같은 술을 식전에 가볍게 한 잔 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술들은 소화를 돕는다고 하여 식후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술 베르무트도 여전히 대중적인 아페리티프 중 하나이다. 프랑스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아페리티프로는 달달한 주정 강화 와인이 있다. 프랑스 남부에서 주로 생산되는 VDN(Vin Doux Naturel),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피노 데 샤항트(Pineau des Charentes),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Port Wine)과 같은 술이 대표적이다. 이런 술들은 디저트 와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식전에 한 잔씩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대중적인 아페리티프 술은 가벼운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크레멍 혹은 가벼운 샴페인이다. 그 외에도 크레멍이나 샴페인에 크렘 드 카시스를 첨가한 키흐(Kir)라고 불리는 칵테일도 프랑스의 전통적인 아페리티프 중 하나이다. 아페리티프를 마셔야 하는데 적당한 술이 없을 땐 단순하게 시원한 라거를 준비해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