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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사진] 독일 나치 점령 1940-1944의 스트라스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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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부터 1944년까지 4년간, 프랑스는 독일 나치에 의해 '프랑스 군정청'을 겪는다. 이 시기에 특히 알자스(Alsace)와 모젤(Moselle) 지역은 독일어권 국가 통합 정책에 따라 독일 국가에 강제 합병되었고, 독일 장교 로베르트 하인리히 바그너(Gauleiter Robert Wagner)의 특별한 통제 아래 가혹한 독일화 정책을 받아들여야 했다. 1940년 7월 전쟁의 여파로 흩어졌던 스트라스부르 주민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맞이한 것은 도시 도처에 세워진 나치 상징물과 독일식으로 변경된 광장과 도로의 이름들이었다. 실제로 이 기간동안 알자스 지역에서 프랑스어 사용은 전면 금지되었고, 모든 사교 생활과 종교 생활이 통제되었으며 이름 또한 독일 식으로 개명해야했다. 아래 펼쳐진 사진들은 바로 그 시기의 스트라스부르 모습이다.

 

 

1940년 스트라스부르 중앙역. 귀환 중인 스트라스부르 피난민들

 

 

1941년 10월 13일. 클레베 광장(Place Kleber)에 집결한 나치 독일군

 

 

철거 중인 클레베 장군 동상

 

 

독일군 거리 행진

 

 

1940년 클레베 광장(Place Kléber)

 

 

독일식(아돌프 히틀러 광장)으로 변경된 브로글리 광장(Place Broglie)

 

 

독일식으로 새 단장 중인 상점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꼭대기에 기대 선 나치 독일군

 

 

독일 나치군의 거리 행진(Avenue de la Paix)

 

 

1940년 스트라스부르 중앙역 앞. 독일 나치군의 부대 검열

 

 

독일 나치군의 시가 행진

 

 

클레베 광장(Place Kléber)에 집결한 독일 나치군

 

 

브로글리 광장(Place Broglie)

 

 

스트라스부르 지방 법원 앞. 방문 중인 독일 나치 대표단

 

 

클레베 광장(Place Kléber)

 

 

스트라스부르 거리. 레오 유스티누스 카우프만(Leo Justinus Kauffmann 독일 작곡가)의 오페라 광고

 

 

롬멜(독일 장군) 부대를 지지하는 거리의 군중

 

 

 

 

 

로한 궁전 앞(Palais Rohan) 독일 기갑부대 팬저 503 대대의 타이거 222 탱크와 부대원들

 

 

1940년 6월 28일.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 도착한 아돌프 히틀러

 

 

1940년 6월 28일.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앞 아돌프 히틀러

 

 

1940년 클레베 광장(Place Kléber)

 

 

1940년. 스트라스부르 중앙역 앞 독일 나치군 시가 행진

 

 

클레베 광장. 시가 행진 중인 RAD(독일 나치군 청소년 선전 단체)의 단원들.

 

 

시가 행진 중인 독일 나치군(Avenue de la Paix)

 

 

도심지의 독일 나치군(rue Mercière)

 

 

1941년 상업용품 전시회 장 앞 독일 나치 상징물

 

 

1940년 클레베 광장(Place Kleber)에 장식된 독일 나치군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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