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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문화

알자스의 성녀 오틸리아(Othi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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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오틸리아(Othilia)

오틸리아(Othilia), 오딜리아(Odilia), 아딜리아(Adilia) 등 여러 이름으로 알려진 성녀 오틸리아는 프랑스 알자스 지역 수호성인이자, 베네딕토회 성 오틸리아 연합회(Congrégation des bénédictins missionnaires de Sainte-Odile)의 수호성인이다. 2021년 12월 13일이 선종 1300주년이었지만, 코로나19로 조촐히 지냈다.

 

이 성인의 이름을 딴 수도원인 '성 오틸리아 수도원(Abbaye de Sainte-Odile)'은 있는 독일의 시골 마을 에레징(Eresing) 자리하고 있다. 베네딕토회에 의해서 이끌어진 이 수도원은 유럽 곳곳에 있는 수 많은 오틸리아 성녀 순례지 중 하나였다. 1365년부터 이 지역에 순례자가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15세기 말에는 에레징(Eresing) 마을 언덕에 경당과 조그만 성이 세워졌고 그 자리에 수도원이 자리 잡은 것이다. 지금 지명인 성 오틸리엔도 이 경당에서 따왔다.

 

그 밖에 베네딕토회의 수호성인 오틸리아의 전설에서 중요한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 성녀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이 수도원에서 자랐는데, 세례를 받으면서 눈을 뜨게 된다. 그 뒤 수도공동체를 이끌며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 여기서 세례로 눈을 뜨는 모티브가 선교 베네딕토회의 모토인 ‘눈먼 이들에게 빛을(Lumen Caecis)’이 된다. 하느님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앙의 눈을 뜨게 하자는 사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 선교수도회

 

 


가톨릭 성인명 | 오틸리아(Othilia) 
축일 | 12월 13일
년도 | 660-720년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수녀원장
수호 | 눈병환자, 맹인들의 수호성인
지역 | 알자스(Alsace) 
같은이름 | 오딜리아,아딜리아, 오틸리아

 

 

 

 

오틸리아(Othilia)

오틸리아(Ottilia)라는 이름은 독일 여성의 이름으로 의미는 "조국의", "행운의 여걸"이라는 뜻이 있고, 스웨덴에서는 '오딜리아(Odilia)'라고 불리우는 여성 이름은 고대 게르만어에서 유래했다. 고대 게르만어의 'aud'를 어원으로, 현대어로 해석하면 "조국", "재산" 또는 "부", "가치", "행운"의 뜻이 있다.

알자스의 성녀 오틸리아

 

 

 


전설의 시각장애인 수호성인

오틸리아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 보주(Vosges) 산맥의 오베르하임(Oberheim)에서 알자스의 공작이었던 아버지 아티크(Attich)와 메로빙거 왕가 출신인 어머니 베레스윈드(Bereswinde)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잔인한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맹인인데다 딸로 태어난 성녀 오틸리아를 못마땅히 여거서 죽이려 했으나 어머니가 유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숨길 수 있었다. 아버지의 분노를 피하여 성녀 오틸리아가 맡겨진 곳은 지금은 프랑스 지역이 된 발마(Balma)에 있던 한 수도원이었다.

성녀 오틸리아는 673년경에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주교 성 에르하르두스(Erhardus, 1월 8일)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성 에르하르두스가 그녀의 눈을 만지자마자 시력이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눈을 뜨게 된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화가 풀렸으리라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집안인 메로빙거 왕조와 싸움을 벌이던 중이라 딸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성녀 오틸리아의 남동생들을 죽이고 '성 오딜(Sainte-Odile)' 산에 딸을 감금시켰다.

680년경에 성녀 오틸리아의 아버지는 처가인 메로빙거 왕조를 없애려는 음모가 어느 정도 성공해서 권력을 차지하자, 그녀를 풀어 주고 베네딕토회에 속한 호헨부르크(Hohenburg) 수도원의 원장이 되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몇 년 후 성녀 오틸리아는 자신이 새로 설립한 니더뮌스터(Niedermunster)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720년 그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성녀 오틸리아는 1807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알자스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고, 동시에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나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오틸리아의 수도원 근처에 있는 샘물은 그녀의 눈을 뜨게 한 샘이라 여겨지면서, 샤르트르(Chartre)와 루르드(Lourdes) 등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유명한 순례지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었다가 눈을 뜬 성녀의 삶 덕분에 성녀와 같은 기적을 바라는 시각장애인들이 몰려들었다. 720년 12월 13일 오틸리아가 죽고나서 수많은 신자와 구원받은 사람들이 일주일 동안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찾아왔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4세가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유물을 수거하기 위해 무덤을 열었을 때 성인의 시신이 잘 보존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몽 생트 오딜(Mont Sainte-Odile) 성녀의 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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