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알자스에서는 5월 8일에 무엇을 기념하나?
5월 8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인정한 날로, 프랑스에서는 '유럽 전승 기념일' 휴일이다. 이 날은 알자스 지역과 각별한 관련이 있는 상징적인 날이기도 하다.
유럽 전승 기념일(Victory in Europe Day)은 1945년 5월 8일을 기념한 날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이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에 허가하고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멸망한 날이다. 독일 세력의 공식적인 항복 후, 채널 제도(Channel Islands)에 주둔하던 독일군은 1945년 5월 9일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독일의 항복은 히틀러의 자살과 베를린 전투의 소련의 승리로 독일의 총통인 카를 되니츠(Karl Dönitz)가 승인했다. 그가 관리하는 정부는 플렌스부르크 정부(Flensburger Regierung)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에 나치 독일 영토를 몇 주 동안 통치한 임시정부이다. 독일의 항복은 7일에 프랑스의 랭스(Reims)에서, 8일에 독일의 베를린에서 비준되었다. 이렇게 5월 8일은 유럽에서 적대 행위가 종식된 날이며, 이 날은 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지만, 같은 해 9월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계속되었다.
처절한 전쟁
2차 세계대전은 알자스에서 수 많은 마을 지역과 세대를 갈가리 찢어놓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남아 있다. 이 전쟁은 나츠바일러-스트루트호프 강제수용소(Camp de concentration de Natzweiler-Struthof)의 공포로 점철되었다. 나츠바일러-스트루트호프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만든 강제수용소다. 1941년 5월 21일부터 1944년 9월까지 운영되었으며, 독일군이 전쟁 전 프랑스 영토에 설치한 유일한 강제 수용소였다.
알자스에서는 해방과 함께 '알자스 전투(Bataille d’Alsace)'가 일어났다. 1944년 11월 19일, Seppois-le-Bas는 가장 먼저 해방된 마을이었고, Moder에서는 1945년 3월까지 마지막 전투를 치렀다. 알자스 곳곳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2차 대전 전쟁의 상흔과 이를 목격했던 어르신들이 공존하고 있고, 운이 좋게도 당시의 목격자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기억을 어르신들과 공유하고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지역의 현실을 전수하고 있다.
1945년 5월 8일
5월 7일, 랭스(Reims)에서 알프레드 조들(Alfred Jodl) 장군이 독일의 항복에 서명했다. 하지만 조셉 스탈린(Joseph Staline)은 훗날 베를린이 되는 어느 소련의 한 점령지에서 항복을 요구했다. 항복 서명은 소련의 장교 주코프(Joukov) 원수의 주재 하에 이루어졌다. 프랑스는 프랑스 제1군 사령관인 라트르 드 타시니(Lattre de Tassigny) 장군이 대표로 참석했다. 독일 측 서명은 독일군 참모총장 빌헬름 케이텔(Wilhelm Keitel) 원수가 담당했다. 항복 조약의 비준은 서유럽 시간으로 5월 8일 자정 직전에 발효되었지만, 당시 소련의 시간으로는 새벽 1:01에 비준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5월 9일을 '전쟁 승리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 이후로 오늘까지 유럽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알자스 등 기념비를 통해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