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인사, 비즈(Bise)의 모든 것
🎙 프랑스식 인사, 비즈(Bise)의 모든 것
여행 중 낯선 소리, "쪽!" 도심 한복판, 카페 앞, 친구의 집에서 자주 들려오는 이 익숙한 듯 낯선 인사법. 처음 보면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연인도 아닌 것 같은데, 만나자마자 볼을 부딪치며 입맞춤…?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순간적인 정적과 민망함이 감돌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인사, 바로 ‘비즈(Bise)’다.
📍 비즈란 무엇인가?
비즈(Bise)는 프랑스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주고받는 일종의 볼 맞춤 인사다. 가볍게 볼을 맞대며 ‘쪽’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흔히 ‘비주(Bisou)’와 혼동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비주는 가족이나 연인, 친한 친구 사이에서 나누는 애정 표현에 가깝다. 반면 비즈는 보다 형식적이고 관례적인 인사다. 말하자면, 프랑스식 “안녕하세요”인 셈이다.
📍 비즈의 기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뿌리는 의외로 멀다. 고대 로마, 페르시아, 그리고 히브리 문화 속에서 남성들끼리 입맞춤으로 인사를 나누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그 당시의 입맞춤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존경과 우애, 연대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현대적 의미의 ‘비즈’가 프랑스 사회에서 대중화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일상에 자리 잡았다. 의외로 ‘신상 전통’인 셈이다.
📍 비즈, 어떻게 해야 할까?
▶ 언제 하나?
비즈는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하지는 않는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족 모임, 친구 집 초대, 가까운 직장 동료와의 만남 등,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경우에만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렇다면 파티처럼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이럴 땐 모두에게 비즈를 하기보다는 가볍게 손을 흔들거나 눈인사로 대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 누군가 비즈를 먼저 시도한다면 예의상 응하는 것이 좋다.
▶ 누구와 하나?
기본적으로는 가족, 친구, 친밀한 관계, 혹은 지위가 동등한 사람끼리 비즈를 주고받는다.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처럼 위계가 뚜렷한 관계에서는 비즈를 피하는 것이 예의다. 물론 나이가 많거나 윗사람과의 상황에서도 예외는 있다. 이 경우에는 상대방이 먼저 비즈를 제안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매너다.
흥미롭게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즈는 여성들 사이에서만 이뤄졌다고 한다. 요즘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흔해졌지만,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여전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다.
▶ 몇 번 할까?
지역에 따라 횟수는 다르다. 파리에서는 보통 두 번, 몽펠리에(Montpellier)나 리옹(Lyon)에서는 세 번, 보르도(Bordeaux)에서는 네 번까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두 번으로 통일되는 추세다. 지역색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 어느 쪽 볼부터?
이것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프랑스 동부나 남동부 지역에서는 왼쪽 볼부터, 북부, 중부, 서부 지역에서는 오른쪽 볼부터 시작한다. 방향이 서로 다르면? 입술 충돌이라는 민망한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 여담, 혹은 TMI
▶ 비즈, 그 은밀한 활용법
비즈는 때로 의도적인 접촉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악수나 목례보다는 훨씬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 친밀감을 빠르게 쌓는 데 유리하다. 볼을 맞대며 살짝 손을 얹거나, 어깨를 터치하거나, 손을 잡는 동작이 은근한 ‘관심 표시’로 쓰이기도 한다. 프랑스에선 볼만 스쳐도 인연이라 할 정도다.
▶ 모두가 좋아하는 건 아니다
물론 모든 프랑스인이 비즈를 반기는 건 아니다. 입 냄새, 피부 접촉, 낯선 사람과의 거리감 등 다양한 이유로 꺼리는 사람들도 많다. 상대가 꺼리는 기색을 보인다면, 혹은 본인이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손인사로 대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눈치와 배려가 중요한 순간이다.
🎙 이제 당신도 ‘비잘알’
프랑스에서 누군가 다가와 볼을 내민다면, 당황하지 말 것.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비즈를 하는지 알고 있다면 그 순간도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다. 어쩌면,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비즈(Bise), 단순한 인사를 넘어서, 프랑스인의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는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