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의 숨겨진 보물, 역사적 와인 저장고

WINE/ALSACE

스트라스부르의 숨겨진 보물, 역사적 와인 저장고

ARCAS 2025. 5. 27. 07:00

스트라스부르 시내 남서쪽에 큰 단지를 이루고 있는 시립 병원의 입구에서 보이는 탑의 지하 갤러리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을 따라가면 시원한 공기와 함께 와인 향이 코끝을 스치게 된다. 지하 1층에 도착하면, 거대한 와이너리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이 역사적인 지하 와인저장고이자, 스트라스부르 병원의 역사적인 와이너리인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백포도주를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스트라스부르의 숨겨진 보물, 역사적 와인 저장고

스트라스부르의 중심부, 시립 병원 지하에 자리 잡은 이 '스트라스부르 병원 지하저장고(Cave Historique des Hospices de Strasbourg)는 유서 깊은 와인 저장고로, 1395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병원의 재정을 지원하고자 시작된 이곳의 와인 생산은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최고급 와인을 숙성시키고 있다.

중세 시대의 병원과 와인 저장고

중세에는 병원비를 금화로 지불할 수 있는 환자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작물이나 토지를 병원에 기부하며 치료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병원은 자체적으로 식량과 와인을 생산하고 보관해야 했다. 이러한 필요성으로 인해 병원 지하에는 대규모 저장고가 생겨났고, 이는 스트라스부르 시립 병원의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했다.

길이 80m, 면적 1200m² 규모의 이 저장고는 곡선형 천장과 석재 바닥, 나란히 놓인 거대한 배럴들이 장관을 이루며 과거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50여 개의 배럴이 여전히 사용 중이며,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알자스의 대표적인 품종인 리슬링, 피노 블랑, 게뷔르츠트라미너 등을 만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1472 빈티지

이 저장고의 가장 특별한 보물은 바로 1472년산 백포도주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럴 보관 와인으로, 품종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와인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994년 분석에 따르면 pH 2.28의 높은 산도를 보이며, 천천히 증발하면서 현재 약 400L 정도만 남아 있다.

이 와인은 역사적으로 단 세 번만 제공된 기록이 있다. 1576년에는 스트라스부르와 취리히의 동맹을 기념하며, 1718년에는 병원 화재 이후 재건을 축하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1944년에는 스트라스부르 해방을 맞아 르클레르 장군에게 한 잔이 제공되었다. 오늘날 이 와인은 철망으로 보호된 배럴 안에 남아 있으며, 투명한 병 속에서 빛나는 호박색 빛깔을 감상할 수 있다.

비밀스러운 지하실과 해부학 강의실

저장고 깊숙한 곳에는 금속문으로 차단된 공간이 존재한다. 이는 한때 의사들이 의학 교육을 위해 사용했던 해부학 강의실로, 당시 교회는 해부를 금기시했으나 의학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처형된 자들의 시신은 병원 인근 까마귀 광장에서 몰래 옮겨졌고, 이곳에서 비밀리에 해부가 진행되었다. 와인 숙성과 해부학 연구가 공존했던 이 공간은 중세 의학과 와인 문화가 어떻게 병원 운영과 맞물려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다.

오늘날의 Cave Historique

6세기 동안, 스트라스부르 병원의 역사적 저장고에서는 와인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전통은 한때 중단되었고, 1999년경 30여 개의 알자스 와이너리들이 힘을 모아 이 저장고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우리는 농업 협동조합(SICA, Société d’Intérêt Collectif Agricole)을 결성하고 스트라스부르 시민병원(Hôpital Civil de Strasbourg)과 협력하여 저장고를 복원했다. 이를 통해 알자스 포도밭 곳곳에 위치한 각자의 와이너리에서 엄선한 알자스 와인을 이곳에서 발효 및 숙성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알자스 지역의 25개 와이너리가 이곳에 그들의 최고급 와인을 저장하고 있으며, 커다란 나무 통에 담긴 채로 병원 지하에서 숙성 중이다. 이로써 시립병원 내에서 이어져 온 와인 양조 전통이 다시 살아났다.

엄격하게 선정된 와인들

매년 1월, 와인 전문가들이 모여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하며, 가장 유망한 와인만이 이 저장고에서 숙성될 기회를 얻는다. 테이스팅은 철저히 블라인드 방식으로 이루어져, 평가자들이 선입견 없이 와인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각 와인은 알자스 포도밭의 특정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며, 그 지역의 떼루아(terroir)와 품종의 특성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이곳에서 숙성되는 와인은 오직 알자스 원산지 통제명칭(AOC, 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또는 알자스 그랑 크뤼(Alsace Grand Cru) 와인만 가능하다. 알자스의 대표적인 포도 품종인 리슬링(Riesling), 실바너(Sylvaner), 뮈스카(Muscat), 피노 블랑(Pinot blanc), 피노 그리(Pinot gris), 클레브너 드 하일리겐슈타인(Klevener de Heiligenstein),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그리고 알자스의 유일한 적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Pinot noir)만이 저장고에서 숙성될 수 있다. 알자스에서 점차 사라져 가던 오크 통(foudres de chêne) 숙성 방식이 이곳에서는 모든 와인에 적용되는 공통 요소다.

오크 통에서 숙성되는 와인

저장고에 있는 50개의 오크 통 중 하나에서 6~10개월 동안 미세한 효모 찌꺼기와 함께 숙성된 와인은 더욱 정제된 풍미를 갖추게 된다. 이 과정에서 와인은 구조감을 얻고, 향미가 더욱 풍부해지며, 보관 기간이 길어진다. 너무 긴 숙성은 와인의 신선한 과일 향을 잃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기간 동안 숙성을 진행한다. 또한, 이곳에서 사용되는 오크 통은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에, 와인에 나무 향이 강하게 배지 않고 은은한 풍미만 더해진다.

이처럼, 역사적인 저장고의 웅장한 아치형 천장이 제공하는 이상적인 환경 덕분에 와인 본연의 개성과 품종 특성이 더욱 뚜렷하게 표현된다. 와인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각 와인의 숙성 과정은 전문 와인 양조학자가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최종적으로 병입할 때까지 세심하게 관리된다.

저장고에서 직접 병입되는 와인

와인이 병입된 후, 각 와이너리는 자신이 생산한 와인을 전량 가져가지만, 일정 비율의 와인은 병원에 제공된다. 이는 과거 몇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전통으로, 병원에 대한 자연적 형태의 임대료 납부 방식이다. 이 때 남겨진 모든 와인은 동일한 디자인의 병과 라벨을 사용하며, 저장고의 상징인 '성 요한 기사단의 십자가(Croix des Hospitaliers)'가 라벨에 새겨져 있다. 병마다 달라지는 정보는 오직 와인의 이름, 생산 연도, 그리고 생산자의 이름뿐이다. 이 정보는 라벨 하단의 노란 띠 부분에 표시된다. 오늘날 이곳 와인 저장고에서 발생한 수익은 모두 스트라스부르 대학 병원에 기부되고 있다.

지하 저장고에서 만나는 다양한 와인

각 와인 생산자는 자신의 와이너리에서 오스피스 역사적 저장고에서 숙성된 와인을 판매하며, 저장고 자체도 이곳에서 숙성된 다양한 와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한 장소에서 여러 와인 생산자의 개성과 알자스 포도밭의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 그것이 바로 스트라스부르 오스피스 역사적 와인 저장고다. 한여름 스트라스부르 여행 중이라면 이곳에서 서늘한 공기와 함께 600년의 시간을 간직한 와인을 만나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이곳은 단순한 와인 저장고를 넘어, 역사의 일부로서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