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밀려난 꼬냑, 다시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해외에서 밀려난 꼬냑, 다시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해외 명성 자자한 프랑스의 증류주, 자국에선 왜 외면받나?
세계 최고급 증류주 시장에서 프랑스는 단연 강국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위상 속에서도 정작 자국산 명주인 꼬냑(Cognac)은 프랑스인의 식탁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프랑스산 프리미엄 술로 찬사를 받는 꼬냑이 유독 본국에선 홀대받아온 셈이다. 그런데 최근 수출 시장이 흔들리면서, 이 상징적인 브랜디가 프랑스에서의 입지를 재정립할 기회를 맞이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꼬냑은 오직 프랑스 서부의 샤랑트마리팀(Charente-Maritime), 샤랑트(Charente), 그리고 도르도뉴(Dordogne)와 되세브르(Deux-Sèvres)의 일부 지역 등 ‘꼬냑 통제 원산지 명칭(AOC)’에서 재배된 포도로만 생산된다. 철저히 프랑스산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내 소비는 연간 2~3%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대부분 관광객 소비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꼬냑 업계는 지금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핵심 수출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역 전쟁의 직격탄, 수출 의존의 리스크 드러나
유럽연합(EU)은 최근 중국의 전략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문제 삼으며, 전기차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개시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유럽산 주류와 증류주에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꼬냑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됐다. 그 결과, 2023년과 2024년 사이 꼬냑의 대중국 수출액은 약 25% 급감했다.
미국 시장에서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2024년 들어 수출량은 다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럽산 제품에 대해 관세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상반기 시장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미국은 전체 꼬냑 수출의 38%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으로, 이러한 위축은 산업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미 AOC 지역에서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시장을 선도하는 헤네시(Hennessy, LVMH 계열)는 지난 4월 말, 전체 직원의 12%인 약 1,2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레미 마르탱(Rémy Martin)은 일부 직원을 6월까지 부분 실업 상태로 전환했으며, 원액 구매도 축소했다. 이에 따라 약 4,400명의 포도 재배자가 자발적 포도나무 철거에 나설 예정이다. 산업 생태계 전반이 구조조정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수출만 바라보던 전략의 전환, ‘프랑스로의 회귀’ 가능할까
사실 꼬냑은 태생부터 국제적인 술이었다. 15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이 샤랑트 지역의 와인을 원거리로 운송하다 변질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도주를 증류한 것이 기원이다. 이 증류주는 ‘브란데바인(brandewijn)’이라 불리며 네덜란드와 그 식민지로 퍼졌고, 이후 브랜디로 자리잡았다. 18세기에는 영국 귀족들이 꼬냑에 매료되어 전 세계로 퍼뜨렸고, 꼬냑 하우스들도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헤네시는 1794년 미국으로 첫 수출을 보냈고, 마르텔(Martell)은 1850년경 아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도 한때는 ‘파인 아 로(fine à l’eau, 꼬냑과 탄산수)’ 형태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스카치 위스키, 럼, 보드카 같은 외국산 증류주들이 들어오며 꼬냑은 점차 프랑스 소비자들에게서 멀어졌다. 더구나 글로벌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던 대형 꼬냑 하우스들은 국내 시장에 대한 관심을 사실상 접었다. 프랑스 내 마케팅은 뒷전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대형 브랜드가 나설 때”
최근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중소 규모 하우스들은 여전히 프랑스 시장을 지키고 있다. 루야크(Rouillac)에 위치한 ‘레미 랑디에(Rémi Landier)’의 대표 제랄딘 랑디에(Géraldine Landier)는 “우리는 프랑스에서 꾸준히 활동해왔고, 중국이나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 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대형 브랜드들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까뮈 프랑스 유통(Camus France Distribution)의 대표 세바스티앵 롱도(Sébastien Rondeau)는 “사이드카(sidecar)나 꼬냑토닉(cognac tonic)을 넘어설 새로운 아이콘이 아직 없지만, 젊은 바텐더들이 꼬냑의 역사와 풍미, 지역성과 정체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AOC의 전통성과 한계, ‘자유로운 창조’가 관건
꼬냑의 강점은 분명하다. 그랑 샹파뉴(Grande Champagne), 쁘띠 샹파뉴(Petite Champagne), 보르드리(Borderies), 팽 보아(Fins Bois), 봉 보아(Bons Bois), 보아 오르디네르(Bois Ordinaires) 등 지역 별 ‘크뤼(cru)’와 우니 블랑(ugni blanc), 포를 블랑슈(folle blanche), 콜롱바르(colombard), 세미용(sémillon) 같은 다양한 포도 품종, 이중 증류 및 장기 숙성, 블렌딩 등의 섬세한 제조 과정을 거친 꼬냑은 고급 미식 문화를 중시하는 프랑스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AOC라는 제도는 창의성을 제약하는 틀이 되기도 한다. 럼이나 보드카와 달리, 꼬냑은 원료나 숙성, 증류 방식에서 자유로운 실험이 어렵다. 최근 몇몇 하우스들이 도전하고는 있다. 배럴을 직접 병입하는 ‘싱글 캐스크’, 고도주, 빈티지 꼬냑 같은 새로운 시도, 혹은 이국적인 캐스크로 숙성한 ‘페랑 르네게이드(Renegade)’, ‘마르텔 블루 스위프트(Blue Swift)’, ‘테상디에 미즈나라(Tessendier Mizunara)’ 같은 제품들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AOC의 규정을 벗어난 상품들이다.
프랑스 꼬냑 생산자들은 결국 핵심은 선택과 결단이라고 보고 있다. 꼬냑이 다시금 프랑스인의 술이 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은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 위에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