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의 알리고테(Aligoté) 와인은 왜 저렴한가?
부르고뉴 전역에서는 샤르도네(Chardonnay)가 여전히 주된 화이트와인 품종이지만, 알리고떼(Aligoté) 역시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 품종이다. 최근 몇 년 간, 알리고떼는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품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단순하다. 향의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가격이 비교적 접근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시는 경험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고유한 캐릭터를 지닌 와인을 찾는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품종이다.
이런 부르고뉴의 알리고테(Aligoté) 화이트 와인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는 여러 가지 역사적, 경제적, 그리고 미학적인 이유들이 얽혀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품질이 떨어지니까 싸다"는 식으로 오해되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배경이 있다.

역사적으로 ‘2등 품종’ 취급
부르고뉴에서는 샤르도네가 전통적인 화이트 와인의 왕자 같은 존재다. 특히 코트 드 본(Côte de Beaune) 지역의 뫼르소(Meursault), 퓔리니-몽라셰(Puligny-Montrachet) 같은 곳에서 나오는 샤르도네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 와인들이 워낙 잘 알려져 있다 보니, 알리고테는 그늘에 가려졌고, 자연스레 ‘2등 품종’이라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알리고테는 꽤 많이 재배되었지만, 20세기 들어서부터 점점 샤르도네에 밀리기 시작했고, 와인메이커들도 샤르도네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알리고테는 주로 ‘일상용’, ‘캐주얼 와인’ 정도로 여겨졌다.

기후와 테루아에 따른 한계
알리고테는 샤르도네보다 산미가 더 뚜렷하고, 향이나 구조가 좀더 단순한 편이다. 물론 좋은 생산자가 잘 다루면 굉장히 신선하고 개성 있는 와인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는 샤르도네처럼 복합적인 풍미나 장기 숙성 능력을 가지기 힘든 경우가 많다.
게다가 알리고테는 상대적으로 포도밭의 '덜 좋은' 위치에 심겨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북향이거나, 고도가 높은 곳, 혹은 토양이 덜 비옥한 곳 등. 이렇게 테루아가 덜 좋은 곳에 심어진 이유는 기본적으로 알리고테가 ‘주력 품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은 테루아는 샤르도네에게 양보되었고, 알리고테는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시장 인식과 수요의 문제
위와 같은 이유들로 시장에서는 ‘샤르도네 = 고급’, ‘알리고테 = 저렴’이라는 공식이 어느새 굳어졌다. 물론 이는 편견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와인 품종 이름만 보고 기대치를 조절하니까, 알리고테는 ‘가볍고 상큼한 테이블 와인’ 정도로 인식된다. 그에 따라 가격 책정도 보수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알리고테는 종종 프랑스에서 즐겨 마시는 키르(Kir) 칵테일의 베이스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역시 그저 믹서 용도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즉, 혼자 빛나는 와인보다는 뭔가에 섞이는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의 재조명 움직임
하지만 흥미로운 건, 최근 몇 년 사이에 알리고테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부즈롱(Bouzeron)처럼 독자적인 AOC를 획득한 지역도 있고, 자연주의 와인이나 신세대 와인메이커들 사이에서 알리고테의 산미와 투명한 맛이 인기를 끌고 있다.
줄리엔 기욤(Julien Guillot)이나 에마뉘엘 질베르(Emmanuel Giboulot) 같은 생산자들은 알리고테로도 매우 독창적이고 고급스러운 와인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아직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 그건 오히려 시장이 아직 이 품종의 진가를 완전히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알리고테(Aligoté) 와인
알리고테(Aligoté) 와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들이 꽤 있다. 단순히 “가볍고 싸구려”라는 인식을 깨뜨릴 수 있는, 정말 정성스럽게 만든 와인들도 있고. 여기서 추천하는 와인들은 대부분 자연주의적 접근, 저수확, 오래된 포도나무, 저간섭 양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산미가 생생하면서도 구조감 있고, 심지어 몇 년 숙성 가능성까지 가진 알리고테들이다.
A. & P. 드 빌레인(Aubert de Villaine) – Bouzeron AOC
지역: Bouzeron (알리고테 유일 AOC)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DRC)의 공동 소유주인 오베르 드 빌레인이 만든 알리고테. 알리고테 도르(Aligoté Doré)라는 품종을 사용하는데, 일반 알리고테보다 더 향미가 풍부하고 깊이가 있다. 플린트(부싯돌) 같은 미네랄 향, 레몬 껍질, 흰꽃. 시간 지나면 벌꿀, 브리오슈 같은 노트도 올라온다. 프랑스 현지에서 가격대는 €30~€40 정도. 알리고테치곤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 있다.
Sylvain Pataille – Bourgogne Aligoté
지역: Marsannay
마르사네에서 뛰어난 자연주의 와인 생산자로 유명한 파타이유. 알리고테 사랑으로 거의 과학자처럼 이 품종을 연구한 인물이다. 상큼하면서도 뼈대가 있고, 마치 ‘샤블리보다 더 날카로운 샤블리’ 느낌.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복합미가 좋다. 가격대는 €20~€30. 특히 "Aligoté ‘Clos du Roy’" 단일 포도밭 버전이 좋다.
De Moor – Bourgogne Aligoté
지역: Courgis
자연 발효, 무첨가 양조로 유명한 생산자. 화학 비료, 제초제 절대 안 씀. 알리고테로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다. 아주 순수하고, 약간 산화된 듯한 너티하다. 신맛이 예리하고, 입 안에서 쨍하게 퍼지는 미네랄감도 있다. 가격대는 €25~€35. 찾기 어렵지만, 만약 프랑스 여행 중에 보인다면 무조건 구입 추천.
Jean-Yves Bizot – Bourgogne Aligoté
지역: Vosne-Romanée
극소량 생산, 거의 예술적 수준의 정밀한 양조. 알리고테조차 귀족적으로 표현해낸다. 텍스처가 실키하면서도 산미는 살아있고, 배, 살구, 구운 견과류 향. 마치 고급 뫼르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프랑스 현지 가격은 €70 이상으로 아주 희귀하고 컬렉터 아이템에 가깝다.
Domaine Goisot – Bourgogne Aligoté
지역: Saint-Bris-le-Vineux
샤블리 남쪽 지역에서 아주 탄탄한 자연주의 양조로 주목받는 생산자. 가성비 끝판왕. 백도, 레몬, 약간의 꿀 향, 굉장히 쿨한 미네랄 느낌. 깔끔하고 균형 잡혀 있다. 가격대 €15~€20로 부담 없이 알리고테의 진면목을 체험할 수 있는 입문자용 추천한다.

부르고뉴 알리고테 선택의 작은 팁
- ‘Aligoté Doré’라는 표현을 보게 된다면, 일반 알리고테보다 품질이 더 높고, 더 깊이 있는 맛이 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 깊게 보자.
- 알리고테는 굴, 생선, 치즈 퐁듀 같은 요리랑 정말 잘 어울리고, 특히 알프스나 쥐라 지방 음식과 놀랄 만큼 조화가 좋다고 평가 받는다.
